Archive for June, 2007

[시][박서원]꽃신발

2007 06 27

꽃신발
——
박서원

정령들은
몰래
꽃씨를 신발에 놓고 간다

그리움에 몸 저리는 병
이루면
괴로운 남녀 술취한 밤
되는 줄 알면서

새록 새록
헌 신발에도
새 신발에도

꽃씨를 뿌리고 간다

헌 신발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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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백석]백화(白樺)

2007 06 26

- 산중음 4

백 석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 백석시전집 ‘모닥불’(1998, 솔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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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상병]나의 가난은

2007 06 26

천상병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왔음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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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철문]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2007 06 26

장철문

얼마나 많은 나무들이 쓰러졌을까?
얼마나 많은 벌레들이 집을 잃고
햇볕에 말랐을까?

한 뭉치에 백권씩 이백 뭉치의 책더미를, 아니
나무등걸을
숲을
천장에 닿을 때까지 쌓는다
개미핥기의 입김만으로도 태풍이 되고
원주민 일부의 오줌발만으로도 노아의 홍수가 되는
보이지 않는 숨결들의
부서지고 으깨지고 표백되고 잉크가 찍힌
집을 쌓는다

이 중에 몇 권이 꼭 만날 사람을 만나
그를
얼마나 오랫동안 창가에, 혹은
길모퉁이에 세워둘까?

그 많은 교정지를 넘기면서도 듣지 못했던
환청을
책을 쌓으며 듣는다

얼마나 많은 새들이 어지럽게 날아올랐을까?
얼마나 많은 짐승들이 숲의 끝까지 달렸을까?

이슬 한방울로 하루치 양식이 넘치고
깊은 숲이 조율하는 바람구멍이 아니고는,
그 작은 파닥거림을
하늘에 바칠 수 없는 것들

얼마나 많은 숨결들이 여린 살과 노래를 잃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