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April, 2008

[책][발췌]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2008 04 12

…내가 거기서 오래 살면 살수록, 내가 그 장소가 갖고 있는 이야기와 기억들을 더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나는 그곳에 뿌리박고 사는 사람들에 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내가 늘 한사람의 국외자로 머물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자신이 하나의 살아있는 전통의 일부, 즉 그 역사적 공동체의 일원으로 소속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약간이나마 경험하였다. 나는 인근 마을에 있는 한 여성을 만난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작은 시골학교의 교사였는데, 그 지역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자료를 찾고 수집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자료들을 모든 사람들이 보고 공부하며, 그럼으로써 그들이 자신의 열정을 공유할 수 있도록 그곳의 소규모 공공도서관의 한켠에 정돈해 놓고 있었다. 그녀가 얘기를 할 때, 내가 듣는 것은 게걸스러운 골동품 소비자의 ‘세련된’ 목소리가 아니라, 한 작지만 역사가 오랜 공동체와 그 사람들의 꿈과 실망, 희망과 슬픔을 자신 속에 육화하고 있는 사람의 경험하고 너그러운 정신이었다. 그녀는 이 조그마한 마을의 삶에 너무도 깊숙이, 그리고 기쁨으로 젖어 있었기 때문에 한 장소에 뿌리박고 사는 사람들의 덧없고 소박한, 끊임없는 일로 채워졌으되 찬양할 만한 삶에 관해 웅변적으로,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추상적 시스템 속의 언어의 탈육화의 정도는 그러한 공동체에 대한 생생한 참여로부터 얼마나 분뢰되어 있느냐에 의해 측정될 수 있다.(134-5)

내가 내 부모님과 사회로부터 받은 재능은 단순히 장식이나 내 기인의 부를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공공선에 참여할 수 있도록 어떤 공통의 사업에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었다.(146)

기술의료에 의한 ‘보살핌’을 죽음에 이르기까지 받는 패턴은 너무나 그 뿌리가 깊다. 사람들이 한 평생에 걸쳐 전문가들로부터 처치를 받아온 결과 어떻게 죽음에 임해야 할지에 대한 그들의 지식은 파괴되어버렸다.(197)

아버지와 어머니이 태도와 행동을 이끈 지혜는 여러 세게에 걸친 경험으로부터 자라나 왔다. 그것은 사고에 선행하는 문화적, 도적적 자세였고, 박식한 상상력보다 더욱 근원적인 것이었다.(227}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충고를 들은 기억이 없다. 양친의 가르침은 말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삶이 보여주던 조용한 확신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230)

한번은 아직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있을 때, 나는 무슨 일 때문에 폴란드에 간 적이 있다. 처음에, 시골은╶ 겨울이었다╶ 황량하게 보였다. … 말보로 담배 광고판도 없었고 어떠한 다른 광고도 없었다. 도시의 거리들은 잿빛이었고 음산하였다 … 네온사인도, 옷을 벗은 남녀가 그려진 그림도 없었다. 나를 부르거나 내 주의를 분산시키거나 나를 유혹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화려한 이미지도, 거짓 약속을 하는 그림도 없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정확히, 내 눈이 열렸고 내 오염된 감각이 정화되었다. 나는 ‘자유’시장 사회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방식으로 진정한 현실(the real)을 보고 있다는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느낌을 받았다. (332-3)